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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연례보고서: 北납치범죄 피해 고통, 과거 아닌 지금도 계속

작성일
2019-11-05 10:02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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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포일자: 2017년 5월 31일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연례보고서
北납치범죄 피해 고통, 과거 아닌 지금도 계속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사)북한인권시민연합 공동보도자료



o 세계의 인권상황을 관장하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2016년도 연례보고서(OHCHR Report 2016)에서 북한이 저질러온 납치범죄 피해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세계로 알렸다. http://www2.ohchr.org/english/OHCHRreport2016/index.html

o 유엔인권사무소(서울) 관계자에 따르면,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Zeid Ra‘ad Al Hussein) 유엔인권최고대표는 5월 30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현지시각)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이번 보고서를 모든 유엔회원국들과 비정부단체(NGO)들에게 각각 공식 브리핑했다.

o 북한에 할애된 부분(223페이지)에서는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후속으로 서울에 설립된 유엔인권사무소의 활동초점과 성과를 밝히고, 주목할 문제로 1969년 북한이 강릉 상공에서 공중납치해간 대한항공 YS-11기 사례를 조명했다.

o 아직 억류된 승객 승무원 11명 중 한 명인 황원 씨(당시 MBC 프로듀서)의 아들 황인철 씨와 가족들이 겪어온 고통과, 아버지의 송환을 위해 수 십 년 째 힘겹게 싸우고 있는 사연을 상세히 소개했다.

o 유엔인권사무소(서울)는 작년 12월 7일 유엔인권최고사무소 명의로 특별보고서를 발표해 납북자 문제가 북한의 반인권범죄이자, 지금도 그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문제임을 강조하면서 근본적으로 인권문제로서 접근할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http://seoul.ohchr.org/KR/Pages/resources.aspx

o 서울 사무소는 황인철 씨 가족의 사연을 포함해 납북피해 문제가 이번 OHCHR 연례보고서에 특별히 소개됐음을 페이스북 공식페이지로 알려 피해가족들의 입장에서 계속 도울 것임을 시사했다.

o 납북피해가족단체와 인권단체들은 크게 환영하고 있다. 1969년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황인철 대표는 “그동안 제일 답답했던 건 우리가 왜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으로 다뤄져야 하나? 왜 이산가족상봉 희망자 명단에 들어가야 하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엔은 우리를 ‘북한이 저지른 납치범죄 피해가족’이고 ‘하루 빨리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지 않는 한, 공소시효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계속 보내고 있다. 우리 납북피해가족들이 이제라도 진짜 이름을 찾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한다.

o 납북피해가족들과 함께 북한의 납치범죄문제를 국내외에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사)북한인권시민연합 박범진 이사장은 “대북정책기조를 달리하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대를 가져보지만 정상회담이나 대북인도지원을 얘기하는 대통령은 있어도 납치해간 우리 국민 돌려보내라고 북한에 강력하게 요구하는 대통령은 한 명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가족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행동으로 나서주기를 요청한다”고 말한다.

o 북한의 반인도범죄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는“KAL기 공중납치 사건은 북한의 명백한 국제범죄행위이자 북한이 부인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결정적 사례다. 만약 한국 정부가 비공개하고 있는 중요한 증거와 기록들이 존재하고, 이러한 자료를 납북피해가족들과 인권단체들이 폭넓게 확보할 수 있다면, 북한을 상대로 국내외에서 전방위 소송을 걸어볼 만하다. 북한의 납치범죄에 관한 조사와 압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며 이번 유엔보고서를 환영했다.

※ 붙임 :『OHCHR Report 2016』북한 관련 내용 한글번역 1부. 끝.



* 223페이지 하단 글상자 번역

분단의 아픔: 인권으로 접근한 한반도 비자발적 가족 분리

어린 시절 황인철 씨는 아버지 황원 씨가 몇 년 동안 멀리 출장을 떠난 것이라고 들었다. “제가 어렸을 땐 아무도 제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황인철 씨가 열 살이 되었을 때, 마침내 진실을 들었다. 1969년 12월 11일 그의 아버지가 탑승한 여객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공중 납치되었다. 납치된 승객과 승무원 중 39명의 승객은 1970년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었지만, 황원 씨와 다른 10명의 승객 및 승무원들은 여전히 실종상태이다. 아버지가 납북되었을 때 황인철 씨는 두 살이었다.

아버지가 납북된 후, 황인철 씨와 가족들은 여러 번 차별과 냉대를 겪었다. 주변 사람들은 납치피해가족들이 북한에 쉽게 조종당할 수 있다고 종종 의심하였다. 황인철 씨는 “피해자인데 되레 사회가 피해자를 경시하고 간첩으로 취급했다”고 말한다.

요즘 황인철 씨는 아버지가 납치된 문제에 대한 오랜 사회적 침묵을 깨려고 애쓰고 있다. 1인 피케팅 시위로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 내에서도 국제적으로도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활발히 나서고 있다. 그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간행한 보고서 “분단의 아픔: 인권으로 접근한 한반도 비자발적 가족 분리”에 소개된 피해가족들 중 한 명이다. 작년 12월 7일 보고서 발표를 발표하면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그는 “어떤 이유에서도 아버지가 계속 북한에 억류되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2010년 황인철 씨는 유엔의 강제적·비자발적 실종 실무그룹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년 후에서야 “[우리 공화국에는] 누구도 본인 의지에 반하여 강제로 또는 비자발적으로 실종되거나 구금된 사례가 없다”고 답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3년 휴전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해 납치된 516명의 명단을 공개해왔다. 한국전쟁 중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명단 작성은 정확한 정보 수집이 어려워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사)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에 따르면, 전쟁 기간 중 8만2천 명에서 10만 명에 달하는 남한 사람들이 납북된 것으로 추산된다.

200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3명의 일본 국적자를 납치했음을 시인하였다. 그 중 5명은 일본으로 돌려보내고, 다른 8명은 사망했다고 주장하였다. 일본 정부는 납북된 것으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소재에 관한 정보를 계속 모으고 있다.